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특별한 코너 ‘함께 만드는 예보광장’. 이번 호에는 직원들의 ‘운동이야기’와 여행기, 에세이를 담아 소개합니다. 직원들의 이야기, 함께 나누어봅니다.
2년 전, 친한 동기끼리 인왕산 등산 후 맛있는 걸 먹자며 시작한 게 아마 어른이 되고 나서 제대로 한 첫 등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입사원 연수 때 회사에서 받은 트래킹화를 다같이 신고 가볍게 등산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올라 정상에 도착한 순간 보이는 서울 전망에 모두가 감탄을 멈출 수 없었고, 저는 이후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올라갈 땐 땀도 나고 숨이 차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어느 정도 정상부에 올라가는 순간 조망이 확 트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등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올라오는 동안 하체를 열심히 단련했다면,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내가 해냈구나!’ 하는 뿌듯함과 벅차오르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점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봄·가을이 되면 주말마다 남편이나 부모님, 회사 동기들과 아침 일찍 산에 오르고 내려와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게 삶에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아직은 하산할 때면 길이 미끄러울까 봐 여기저기 잡고 내려오는 ‘등린이’이지만, 예비 등린이 분들께 가벼운 마음으로 물 하나 챙겨서 가까운 낮은 산이라도 올라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제가 2023년도에 크라브마가 무술학원에 등록한 후 지금까지 꾸준히 수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크라브마가는 이스라엘 무술로 칼 빼앗기, 발차기, 복싱, 주짓수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기술도 배울 수 있어 실생활에 유용합니다.
다른 운동들과 달리 여러 종목을 폭넓게 배울 수 있어 운동 배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적합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속한 크라브마가 무술학원은 특유의 가족 같은 분위기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딱입니다. 무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나 혼자 산다> 진지희 편을 시청한 후 체험 수업을 신청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게다가 연예인들도 많이 다니는 학원이라 연예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3년 전, 여의도에서 따릉이를 타고 천호대교까지 라이딩을 했습니다. 강변에서 부는 맞바람과 풍경을 즐기며 온몸이 땀에 젖어 3시간을 들여 집에 도착한 경험을 시작으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그때는 너무 힘들어 잠시 포기). 자전거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이지만, 지나치게 속도를 내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체력에 맞는 평속을 유지하면 주변의 풍경을 즐기며 혼자서도, 가족과 함께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운동입니다(동호회로 타도 괜찮고 함께 운동하면 좋은 점도 있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이후, 그동안 앓아왔던 엉덩이와 이상근 통증에서 해방되었고, 다리 저림도 사라졌습니다. 또한 허리 근육이 강화되어 하체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강변에서 야간 라이딩을 즐기면 힐링이 되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라이딩 후 체력이 점점 강화되고, 라이딩 거리가 늘어날 때 성취감을 느낍니다.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할 때는 봄과 가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질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장비도 중요하지만, 요즘 자전거 가격이 많이 내려서 구입하기 좋은 시점입니다. 적극 추천드려요. 한 번 도전해 보세요!
도쿄. 아침 일곱 시. 어젯밤에 비가 퍼붓듯이 쏟아졌다. 다행이라 할까, 이미 8월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혹은 내일까지 히라야마平山의 흔적을 찾아다닐 것이다. 영화(Perfect Days)대로라면 히라야마가 사는 곳에 아침 다섯 시쯤에 도착해서 그처럼 자판기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영상만큼이나 음악을 잘 쓰는 빔 벤더스 감독이 엄선한 OST를 들으며 그의 일터를 찾았을 것이다. 도쿄에 수십 번째지만 히라야마가 사는 카메이도亀戸를 가본 적은 없다. 호텔에서 거의 백 분이 걸린다. 그럴 바에야 그가 귀가할 즈음에 그곳에 가기로.
건축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최상의 건축가들이 자신의 개성을 담아 도쿄 시내에 화장실 열일곱 개를 만들었다. 히라야마는 그 화장실을 청소하며 산다.
신주쿠에서 버스를 타고 요요기 후카마치 공원에 내린다. 안이 환히 보이는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화장실은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뿌예져서 안에서는 밖을, 물론 밖에서는 안을 절대로 볼 수 없도록 설계됐다. 히라야마가 방금 청소한 듯 깨끗한 안에서 문을 잠그지 않고 밖을 보면 노숙자를 연기한 원로 무용가 다나카 민田中眠의 괴상한 포즈가 만져질 듯 투명하다. 문을 잠그면 일순간 바깥이 차단되고 나만의 공간이 된다.
구글맵에 미리 저장해둔 곳들을 찾아간다. 어떤 것은 지하철역 바로 앞이거나, 어떤 것은 지하철을 내려 자전거를 타야 하거나, 버스를 타야 하거나, 심하게는 섭씨 사십도에 가까운 뙤약볕 아래를 삼십 분 이상 걸어야 하거나.
7월 어느 주말에 광화문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경희궁의 짙고 푸른 나무 사이에 쏟아지는 햇볕을 올려다봤다. 코모레비木漏れ日. 영화 속 주인공 히라야마는 낡은 필름 카메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숨어 있다가 수줍은 듯 비추는 햇살의 순간을 담았다.
히라야마가 편의점 샌드위치를 들고 소박한 브런치를 먹는 장소는 하치만궁八幡宮幡宮. 일본 전통종교 신도神道에서는 흔한 무운武運을 비는 신사神社중 맏형격이다. 이토 토요오伊藤豊雄가 디자인한 버섯 삼형제 화장실 옆 계단을 땀 흘려 올라가면 하치만 숲이 있다. 돌벤치에 앉아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바람에 흩날리는 햇살을 올려다본다. 8월 한여름 도쿄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물걸레를 몸에 붙이고 다니는 짓이다. 땀을 닦으며 차가운 녹차를 들이킨다. 아직 10시다.
메이지신궁明治神宮 앞 도로의 작은 공원에 왔다. 오래전 회사가 준 기회로 어학연수를 할 때, 이 동네는 노숙자와 터프(?)한 형님들의 공간이었다. 그 음침한 곳을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확 바꿔 놓았다. 그답지 않게 알루미늄으로 겉을 감싸고, 문을 없애고 미로처럼 내부 동선을 꾸몄다. 칙칙했던 동네가 개방적이고 산뜻하게 바뀌었다. 움츠리며 지나던 길을 그의 작품이 등대처럼 밝혀준다.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Tokyo Toilet Project, “공유共有의 비극” 대신 공공公共의 가치를 세련되게 일깨워주는 노력이다.
차가운 회색 콘크리트와 그 틈 사이 내리꽂는 빛을 애정하는 안도의 작품보다는 갓 대패질한 나무 막대를 듬성듬성 엮어 햇살이 나뭇결을 따뜻하게 감싸게 한 쿠마 켄고隈研吾의
건축을 좋아한다. 멀리서 봐도 ‘아, 이건 쿠마 거구나’ 할 만큼 그만의 개성이 뿜어 나오는 화장실은 쇼토 공원에 있다.
시부야 쇼토松濤 지역은 도쿄 시내 고급 주택가로 이름이 높다. 화려한 일족을 자랑하는 아소 타로麻生太郎 전 수상을 비롯하여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저택, 누구나 다 아는 배우, 예술가의 집이 모두 이곳에 있다. 그 거창한 동네 한복판 공원에 이 작품이 있다. 남성, 여성으로만 구분된 화장실이 아니라, 장애인, 어린이, 임산부, 가족용으로 다양한 여러 공간을 만들어 놀이공원을 떠올리게 한다. 구석구석 보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건다. “관광객이신가요?” 히라야마와 똑같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 청소원이 웃으며 나를 본다. “아닙니다. 내가 야쿠쇼상役所さん(히라야마를 연기한 배우 야쿠쇼 코지役所広司)에게 청소를 알려준 건 아니에요. 다른 선배가 가르쳐 줬지요.” 나의 당돌한 질문에 친절히 말한다. 그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봤다.
한참만에 히라야마의 집에 도착했다. 그가 아침마다 애용한 음료자판기는 없었지만, 다른 모든 것이 영화 그대로다. 여동생과 조카를 보내고 눈물 흘렸던 집 앞 주차장엔 그의 것인 듯 작은 화물차가 서 있다.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간다.
쇼토의 고급 저택들과 달리 여기는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우리 아파트와 다르게 일본, 특히 도쿄에서 ‘아파트에 산다’라고 말하려면 ‘저는 목욕탕도 없는 공동 합숙소에 살아요’라는 고백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 동네 목욕탕은 그래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오후 세 시, 문이 열리자 우르르 들어가는 할아버지들과 기름때 눅진한 중년들 사이로 땀자국 가득한 셔츠를 벗고 몸을 씻는다. 어색해하는 나에게 물비누와 샴푸 통을 건네며 밝게 웃는다. ‘너, 여기까지 왜 왔니?’라고 묻듯이. 얇은 벽이 높은 천정의 반쯤으로 남탕과 여탕을 나눈다. 여탕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벽을 넘어 천정을 울리며 쨍쨍하다.
스미다강隅田川을 따라 내려오는 자전거에 저녁노을이 쏟아져 내린다. 그 길 끝 지하철역 구석에 선술집이 있다. 히라야마처럼 싸구려 소주에 물을 섞은 미즈와리水割り 한 잔과 사백 엔짜리 야키소바로 노곤한 몸에 알코올을 적신다. 몽롱한 눈으로 흐느적 발을 옮긴다. 영화에는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가 멋들어지게 노래하던 “스나크 빠”snack bar로 나오지만 사실은 이탈리안과 프렌치가 섞인 비스트로bistro에 멈춘다. 오후 여섯 시, 빨간 등이 켜지고 히라야마가 앉았던 구석에 앉는다. 이 집에 한국 사람이 온 것은 처음이라는 주인 부부의 웃음에서, 아직 남은 이번 여행은 이미 종착역에 섰다.
다음 날 저녁에 도쿄 시내에 나름 강한 지진이 있었다. 이 백년이 넘었다는 술집에서 마시고 있을 때였는데, 테이블이 흔들리고 유리잔이 떨어졌다.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지구인은 흔들리며 돌고 있는 지구에 얹혀 산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각자의 퍼펙트를 찾아 헤멘다. Perfect한 히라야마의 Days가 보고 싶었다. 『Perfect Days』를 찾아다닌 여행, 이번에도 신세졌습니다. 今度も、お世話になりました。
사무실 창밖으로 청계천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청계천의 움직임이 잿빛 구름을 따라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12월입니다. 만물이 소멸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소멸
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순간 가슴이 싸합니다.
이때가 되면 자주 듣는 음악이 있습니다. ‘슈베르트’입니다.
슈베르트는 31살에 요절했습니다. 모차르트보다도 짧은 생애였지요. 더구나 그 시기에 비엔나에서 슈베르트가 음악가라는 것을 알아준 사람은 친구 몇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평생 음악회를 한 번밖에 열지 못했지요. 지독히 가난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독신으로 죽었습니다. 불행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현실의 벽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가 멜로디에 있어서는 절대미학을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습니다. 아름다운 곡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짧은 생애였지만 600여 개에 이르는 가곡과 8권의 교향곡 등 다작을 내놓았습니다.
영국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를 아시나요? 영국의 명문 옥스포드대 역사학 박사 출신입니다. 정규 성악교육 없이 서른이 넘어 데뷔했지요. 그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바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노래했습니다.
큰 키의 보스트리지가 성큼성큼 걸어와 무대에 섭니다. “방랑하는 것은 물방앗간 청년의 즐거움이라네. 방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가 퍼집니다. 생각보다 성량은 작습니다만 딕션과 목소리의 표현력은 제일입니다. 공연장은 이내 조용해졌고 객석의 집중도는 높아졌습니다. 그날 청중의 공기가유난히 착 가라앉았지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리트’입니다. 리트란 낭만파 서정시에 음악을 결합한 독일 연가곡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뮐러의 시에 부친 슈베르트의 첫 가곡집이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시골 물방앗간에서 일자리를 잡은 한 청년입니다. 청년은 주인집 딸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곤 그녀와의 열병 같은 사랑을 이루죠. 하지만 이내 더 경험 많고, 더 매력적이고, 더 나이가 많은 연적(사냥꾼)에게 애인을 빼앗깁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청년은 질투하고 좌절하다 결국 시냇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보스트리지는 그 모습이 마치 주인공이 현신한 것만 같았습니다. 피아노에 기대어 쓰러질 듯 노래하다가도, 질투에 사로잡힌 청년의 마음을 대신할 때는 무대 앞으로 나와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분노에 차 노래했으니까요. 푹 빠져 듣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20번째 곡, “시냇물의 자장가”입니다. 시냇물은 피아니시모로 죽어가는 청년에게 속삭입니다.
“이제는 편히 쉬어. 눈을 감아도 돼. 지친 방랑자여, 집에 돌아왔네. 이곳 만큼은 변하지 않아. 내 곁에 누워.” 첫 소절을 들으니 울컥해집니다. 그의 비극이 내 가슴에도 칼날처럼 박혔다가 뽑혀나갑니다.
공연이 끝나고 음악당 로비에서는 사인회가 열립니다. 관객들이 쓰나미처럼 몰려나와 서 있습니다.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그날 저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음악당 앞 거리를 무작정 걸었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지요. 한참을 걸었습니다. 제 젊고 순수한 시절의 사랑과 고뇌 그리고 내가 준 상처, 반대로 내가 겪은 아픔, 마지막으로 죄책감, 여러 복잡한 상념들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이라서 쓰라렸나 봅니다. 그날 이후 며칠을 지독한 감기로 고생했습니다.
오늘처럼 부쩍 추워진 이 계절이 느껴지면 한 번씩 떠오르는 그날입니다. 이 겨울, 슈베르트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